등장인물 / 예수님과 제자들
배경 / 다락방 담화가 계속된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
1) 주님이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가?
2)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는 무엇인가?
3) 스스로 말하는 가? 들은 것은 말하는가? 믿고 말하는 가? 의심하여 말하는 가?
■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 내가 떠나가면 너희를 홀로 두지 않을 거야,
보혜사이신 진리의 영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실꺼야 "
" 진리의 영으로 인해서 너희가 내가 지금 어떤 얘기를 하는지 알게 될 거야 " 믿지? "
나 같으면 뭐라고 했을까? 난 지금 수세기가 지난 다음에 제자들의 죽음까지 다 알고 나서 말씀을 보고 묵상을 하니까
당연히 성령을 기다려야지 하는데.. 실제 내가 제자라면.. 그것도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라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솔직히 난 주님이 떠나시는 것이 너무 싫었을 것 같다. 이대로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바라보며
따라다니는 많은 무리들에게 " 우리 스승님이시다! 하며 자랑하고 싶고 우월감에 있고 싶을 것 " 같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좀 뭐라하지만 그래도 이런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뭐가 두렵겠는가?
그런데 자꾸만 주님이 떠나신다고 한다.. 허허.. 어쩜 좋나..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것만 봐도 주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내 그림이 더 크고 원하는 바도 너무 강렬하니까
다른 것조차 듣고 여유를 가질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 내가 지금 원하는 자리에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이 곳을 떠나라고 얘기한다면 나는 이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맞고 틀리고를 엄청나게 계산해서 머리로 두드리고 정보를 이곳저곳에서 찾고 묻고 난리가 아니겠지?
떠나는 게 이익인지 VS 남는 게 이익인지~
그런데 주님은 떠나고 남고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느냐? 라고 얘기하시는 것 같다.
내가 떠나가고 분명히 아버지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실 거야! 믿어? 내가 말한 거니까~ 내가 아버지와 함께 하니까! 믿어?
어떤 상황에서든지 맞고 틀리고, 내 이익과 그림이 아니라
성령께 묻고 그 음성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
■ 죄에 대하여 =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의에 대하여 =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 =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심판에 대하여 = 세상 임금을 심판 함 =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담대하라!
일반적으로 죄는 내가 행위나 마음으로 짓는 여러 가지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것들로 많이 인식하고 왔는데
죄 =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이라고 말씀해주신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구원과 관계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믿지 않으면 영생이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 체
불구덩이로 빠지는 것을 하나님이 그냥 보고 계실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자!
의 =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 즉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그 과정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구속 사역,
즉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너무 감사하다
심판 =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는 것, 부활로 인해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창 3:15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세상 임금은 사단이니 사단을 무너뜨리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이다.
■ 스스로 말함인가? 듣는 것을 (성령으로) 말함인가?
우리는 너무 쉽게 결정하고 실행한다. 나도 그랬다. 무엇이 중요하고 왜 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일단은 몸이 움직인다. 그러나 정말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인가? 성령님의 깊은 감동으로 인함인가?
많이 기도해야 한다. 깊이 묵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는지..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고 싶으신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물어야 한다.
분명히 말씀해 주시면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도 함께 공감하며 내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고개를 가로젓고 불만과 분열이 일어난다면 이건 내 생각이 아닌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분명히 한 성령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한 마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분열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든지 성령님께 묻고 응답을 주시기까지
내 마음이 주님께 붙잡혀 고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상황과 환경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까지 들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주시길 기도합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순종할 것을 사랑으로 찾게 하셔서 주님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달려가는
매일매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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