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 예수님, 베드로, 또 다른 제자, 대제사장과 그의 하수인, 베드로와 함께 불 쬐는 사람들
배경 / 안나스의 집으로 잡혀가신 예수님을 따라서 베드로와 안나스를 아는 제자가 함께 따라간다.
다른 제자가 제사장의 뜰에 들어갈 때,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말한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첫 번째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심문을 당하신다. 대제사장이 묻는다 너의 제자들과 교훈은 무엇이냐?
"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내가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가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
이에 대제사장의 하수인 하나가 손으로 예수님을 치면서 말한다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
그리고 안나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낸다.
이때, 시몬 베드로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나는 아니라!
말고의 친척이 말한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베드로가 또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닭이 울더라
1) 예수님의 당당함 VS 억지 부리는 대제사장
2) 베드로는 나중에 이 구절을 성경에 넣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을까?
◆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 내가 이미 다 얘기한 거 알잖아?
내가 숨기는 거 있어? 다 들었잖아? 왜 물어?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봐 "
대제사장의 하수가 예수님을 때린다. 왜 이렇게 대답해? 자세가 틀려 먹었어! 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에 새겼고 부활을 붙잡았으며 십자가의 길이
피해야 할 길이 아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더욱 알게 되었다.
대제사장의 질문에 당당하게 얘기하신다. 거칠 것이 없다. 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잡아 왔는지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거 같다.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죽이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자신을 죽일 것을 이미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상태를 더 알려주시기를 원했던 거 같다.
나를 잡아온 진짜 목적이 나의 대답을 듣는 것이 아닌 날 죽이려는 것임을 너희는 왜 말하지 못하느냐?
이렇게 들린다. 내 마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제사장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친다.
왜 말투가 이래? 공손하게 대하지 못해? 이분이 누군지 알아? 바로 대제사장이야!
얼마나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철저히 지켜온 분이고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알아?
감히 네가 이런 식으로 대하실 분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때리는 것 같다.
예수님은 또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틀린 말을 했으면 그 말을 증언하라! 바른말을 하였는데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 대제사장 쪽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이상 형식적으로 재판을 하려 하지만
진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자신들이 믿고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과 지금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왜? 내가 기대하고 그리는 그림이 너무 크고 힘이 들어가서
어떤 것도 어떤 마음도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내가 힘주고 소비했던 많은 시간에 대한 보상이
바로 지금의 대제사장의 위치인데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기에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중요하니까..
하나님도 아니고 내가 더 중요하니까.. 말은 하나님이라고 얘기는 하고 형식은 갖추고 있지만
진짜 내 마음에는 나뿐이니까.. 내 직분, 내 권위, 내 능력, 내 위치가 중요하니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즉..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내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으니까
빼앗긴 상태인지도 모르니까 진리를 보고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① 내가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②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붙잡는 힘이 너무 강력하다
③ 내가 노력한 대가로 지금의 직분, 권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노력의 보상이다!
④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즉 믿을 수 없다
⑤ 이미 내 마음을 사단에게 다 빼앗겨 버렸다. 그런데 빼앗긴 상태인지도 모른다.
⑥ 예수님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죽일 수밖에 없다. 메시아가 아니라고 내가 믿기 때문에
◆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처럼 닭이 울기 전 3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그런데 이 성경은 이 일이 일어난 후 한참 후에 기록되었고
그 당시는 이미 베드로가 굉장히 높은 사도로서 칭송받을 때인데도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기록에 넣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베드로는 내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영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다시 만나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삶의 모든 이유였던 거 같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기에
다시 주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분을 기쁘게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그분을 전하리라.. 그 마음이 느껴진다..
이런 실패한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과거 실패한 경험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 그때는 주님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너무 힘을 많이 주고 내가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내 영광을 찾고 싶었으니까.. 죽기 싫었거든... 무서웠거든.. 예수님도 잃고 나도 죽고..
내가 믿었던 신념이 다 무너지게 되는 순간이 너무 무서웠거든.. 피하고 싶었어.. 정말로..
이런 시간이 다 필요했던 거구나.. 더욱 예수님을 알고 믿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날 위해 만드신 시간이구나. 나의 밑바닥을 보게 하신 거구나.. 그래서 주님을 찾으라고!
주님을 바라보라고! 그래도 주님이 날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준비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 나도 그렇다. 실패한 시간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주님이 가장 고생하셨고 가장 옆에 계셨고
가장 나를 사랑하신 것이다. 더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주셨고 결국 교회로 인도하셨다.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세운 것이다. 실패가 아니라 과정인 것이다. 끝이 아니라 지나가는 중인 것이다.
주님의 시선에서는 실패란 끝이란 없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 시선은 너무 낮고 작아서 주님께 시선을 두기가 참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말씀 붙잡고
사랑이신 주님께 더욱 내 마음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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