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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 묵상

요한복음 13장 1-11절 묵상

by 건하민아빠 2020. 2. 26.

등장인물 / 예수님, 제자들, 시몬 베드로, 유다

배경 / 유월절 전에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저녁 먹는 중에

"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

"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왔을 때 "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 "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

주님이 말씀하신다 "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베드로가 말한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

1)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신 것일까? 가롯 유다를 향한 마음이 두 번이나 오는 이유는?

2) 굳이 발을 씻으면서까지 낮아지시고 섬기신 이유는 무엇일까? 진짜 겸손은 무엇일까?

◆ 13장 1절에 "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라고 말씀하신다. " 때 " 를 아시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시니까

"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라고 쓰여있다. 아마 사도 요한은 이때는 잘 몰랐을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을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을 전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알지 않았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밖에는 달리 표현할 게 없는 것 같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을 사랑이라..

왜 사랑이 제일일까? 믿음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 같은데..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아보니 알겠더라. 사랑하니 바랄 게 없고 사랑하니 믿어지고 사랑하니 뭘 해도 기대가 되고, 사랑하니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주고 싶고.. 아이가 다치면 내가 다쳐야 하는데 ..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님의 사랑을 배워가게 되었다. 사랑하니.. 죽을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믿어지고 기대와 소망이 생기는 것이구나.. 하며 알아가게 되었다.

가롯 유다도 정말 사랑하신 것 같다. 그래서 또 얘기하시고 또 얘기하시고.. 이미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 그래도 예수님은 10~11절에 또 얘기하신다.

"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 또 얘기하신다.

제발 돌이켜라, 제발 돌아와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를 떠나서는 어둠에 거할 수밖에 없으니 빛으로 들어와라, 유다야! 돌아오렴!

[완전하고 간절한 사랑의 외침]으로 나에게 들린다. 주님이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빛으로 들어오렴! 어둠에 거하지 말고 나에게 오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인 나를 찾으렴,
내가 영원한 참 빛으로 너를 사랑할 테니 나에게 오렴~ 주님.. 주님.. 사랑합니다. 그 품에 내가 달려갑니다..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 발을 씻기는 것은 중동에서는 더러운 것으로 여긴다고 묵상 에세이에 나온다. 누군가에게 그의 발바닥을 가리키는 것은 무례한 일이며, 아랍인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모욕은 신발을 들어 사람을 때리는 것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발을 씻기셨다. 세족은 속죄의 상징이라고 본문 해설에 나왔다. " 이미 목욕한 자 " 의 의미는 마음이 죄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상태, " 예수님을 믿고 진짜 구원의 삶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자 " 라고 생각된다. 나의 지금 상태와는 상관없이 다시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면 이미 목욕한 자로 주님이 불러주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는 상관없이 이미 목욕한 자로 여겨주시고

섬김, 겸손의 모습을 보이신 주님. 그 섬김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다.

주님의 섬김과 겸손이 내 삶에 흐르고 있는가? 진짜 겸손은 무엇일까?

겸손.. 하면 그냥 마음을 낮아지고 상대방을 높여주는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진짜 겸손이야말로.. 상대방에게 최선의 다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게 진짜 겸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저 마음이 조금.. 행동이 조금 상대방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신 죽기까지 사랑하신 섬김과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겸손이 아닐까 한다. 오늘 내가 해야 할 겸손은 주님이 주신 자리에서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주님 의지하며 살아내는 것이 겸손이 아닐까 한다."이 정도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엄청난 교만이라는 생각도 얻게 되었다. 주님 앞에서의 나의 겸손은

" 주님 끝까지 믿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주님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끝까지 죽을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요 ...라고 고백한다

주님이 보여주신 섬김과 겸손... 나는 이렇게 죽기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님을 사랑해서 끝까지 보내주신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살고 싶어요. 주님 도와주세요..
저는 안 되지만.. 그래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 아멘-

<푸른눈의 선교사이자 조선의 어머니라고 불리던 서서평 선교사님의 겸손과 헌신..  지금 이 시대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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