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 부활하신 예수님, 베드로, 요한
배경 /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호수 (갈릴리 호수)에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을 찾아오신다.
조반을 준비해주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베드로가 말한다. "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 " 내 어린양을 먹이라 "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베드로가 말한다 "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 " 내 양을 치라 "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한다. "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
" 내 양을 먹이라 "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그런 후에 요한은 글을 쓴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1) 세 번 물으시고 용서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물으셨을 때 내 마음을 돌이켰는가?
2) 내가 원하지 않는 곳은 지옥인가? 주님은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데려가려 하시는가?
◆ 주님은 베드로의 세번의 부인을 다시 돌이키도록 미리 준비하셨다. 물고기도 153마리나 잡게 하시고 조반을 만들어서
힘들었던 그 마음을 다 녹여주시고 베드로의 중심에 있는 해결되지 않은 그것을 아시고 먼저 말씀해주신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는 먼저 회개하거나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 다들 그렇잖아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다고요!
이게 나의 태도였다. 남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내가 지은 죄에대해서는 회개하며 돌이키는 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의 태도인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나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바쁘고 힘들었다. 뒤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조차 보고 싶지도 않았고 볼 눈도 없었다. 그저 기억을 돌릴 뿐이지
내 안에 있는 선, 악은 볼 수 없었다. 선은 없었고 솔직히 악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갑자기 아내를 통해서 나를 깨우셨다.
그냥 찾아오셨다. 나는 주님을 바라지도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고 찾지도 않았고 멀리멀리 떠나고 또 떠났지.. 근처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삶 속에서도 주님은 나를 바라보고 계셨고 나보다 더 끈질기게 나를 기다리셨고, 매번 나를 찾았으며
절대 떠나지 않고 내 마음에 찾아오셨다. 주님께서 물으셨다. "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 " 내가 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그렇게 주님께서 나에게 물으셨고 나는 엎드려 고백했다. 용서하시고 용서하시고 용서하시옵소서...
그렇게 나의 고백을 받아주셨다. 그렇게 내 마음을 돌이키고 나는 주님과 살게 되었다
내가 한 것은 내가 이런 놈이요.. 이런 나쁘고 쓰레기 같은 놈이요. 나는 계속 주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이에요.
제가 십자가에 죽었어야 할 놈이라고요... 라고 정직하게 다 토설했다. 그런데 그 토설을 주님이 다시 다 받아주셨다.
그렇게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숨을 쉬게 되었다. 그 뒤로 토설하고 회개하는 것이 좋다. 그게 너무 좋다.
◆ 내가 원하지 않는 곳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솔직히 화도 나고 맘도 많이 불편하다.
여기 왜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한다. 주님이 보내신 이유.. 뭘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짧게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보낸다.
원하지 않는 삶 = 지옥같은 삶. 이렇게 많이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이 문뜩 난다. (썩을 사탄...)
주님은 왜 나를 이 곳에 두는 것일까?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이 곳에 있게 하실까?
처음 교회로 돌아왔을 때는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서 많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서
너무 감사했다. 다시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 곳에서 많은 시간동안 주님을 계속해서 만나면서 어느 자리이든 주님을 만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그래서 사업자를 만들고 장소를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 나라이기에 그곳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기에 담대하게 움직이려 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예비하시고 부르시는 길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항상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게 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그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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